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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olstices and the Wooden Faces of the Village of Hari

하리마을 사람들은 유월 하짓날 아침에 뒷산에 서있는 고목 한그루를 베어오곤 한다. 하늘이 게면 잿빛 외투를 걸친 할아버지들이 톱과 도끼를 들고서 하리마을 고목에서 울고있는 얼굴을 한 목상을 아무말도 없어 깎아네기 시작한다. 나무껍질과 가지들은 아이들이 조심스레 모아 불태우고, 톱밥은 빗물과 진흙에 섞여 슬픈 목상의 붉은 눈물이 된다. 완성된 목상은 그날 해가 지기전 마을 서쪽으로 운반되어 옛날부터 조상님들이 다니시던 잔디와 모래길 옆에 세워지게 된다.

그리하여 지는 석양을 바라보는 얼굴들은 이제 이백. 이 목상들은 동짓날 밤에 뜨거운 붉은 눈물을 흘려 조상님들의 길을 덮는 서리와 얼음을 녹여버리고 독각왕자님들이 하리마을 뒷산으로 가는 길을 밝혀 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세상의 한기가 하리마을에 내려앉아 그 목상들의 눈물은 더이상 뜨겁지 않게 되었다. 몇몇 어르신들은 독각왕자님들이 뒷산으로 오지 않으실까 두려워 좀더 많은 목상을 만드려 했으나, 여태까지 하짓날이 아닌 때에 만든 목상은 울지 못했다. 그리하여 사년전부터 하리마을 사람들은 동지 전날에 독각길에 염화칼슘을 뿌려놓기 시작했다. 봄에 대지를 뒤덮는 민들레와 가을에 파도치는 잔디가 죽더라도, 매년마다 독각왕자님이 뒷산으로 오는건 하리마을을 가호하는 전통. 어찌라도 그 길이 끊길수는 없는 것이다.

오늘은 밤이 무척이나도 긴 밤. 철갑 소나무 사이로 흘러오는 햇빛마지도 얼려버리는 추위. 세월과 노동에 멎어버리는 할아버지들의 무릎들. 끝없어 서있는 슬픈 목상들은 해가 지면서 빨간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칼같은 바람 사이를 해치고 뛰어가는 소년은 한명. 그의 왼손에는 성냥갑, 오른손에는 경유 3리터. 소금과 가솔린은 바닥을 뒤덮는 눈과 눈물 위로 둥둥 떠다닌다. 저 멀리에는 도깨비들의 꽹과리와 천둥번게. 어서 독각왕자님들이 하리마을로 오시기전에 빨리 길을 치워드려야지.

대지에 불이 붙자 이백의 목상들은 쇳덩이처럼 녹기 시작한다. 눈물은 더이상 피가 아닌 용암. 그 열기에 땅과 산이 춤을 춘다. 오늘은 하리마을의 동짓날, 도깨비들이 시끄러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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